미천한 臣이 辭意를 밝힌 지도 어언 달포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첫 辭意를 밝힌 이후 主君께서 三顧草廬의 예를 보여 미천한 臣을 계속 곁에 두고자 하시니, 머리를 조아리다 못해 바닥에 짓찧어 한 말의 피를 흘린들 어찌 그 송구스러움을 표현할 길이 있겠사옵니까.
그러나 그 옛날에 孔子는 이미 知之者는 不如好之者요, 好之者는 不如樂之者라고 하였습니다.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는 것이니, 小臣은 주어진 業務를 알기는 하나 좋아하지도 않거니와, 즐기지는 더더욱 아니하옵니다. 자신의 業을 즐기지 아니한다는 것을 스스로 밝힘은, 곧 主君을 섬김에 있어 忠心을 다하지 않고 있음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어리석음의 所致가 아니겠습니까.
그리하여 全部가 아니면 全無를 擇하고야 마는 小臣의 옹졸한 性品이 결국 "草野로 물러남이 한 달이 되든 두 달이 되든 좋으니 언제든 돌아오라" 말씀하신 主君의 河海와 같은 아량조차도 枯死케 하고야 말았으니, 전적으로 小臣의 不德을 恨歎할 뿐이옵니다.
그러나 미천한 小臣이 더욱 몸을 낮추어 마지막으로 한 말씀 올리니 들어주시옵소서.
2001년, 한 되의 米穀을 얻고자 入社하여 중도에 退社한 후 5개월만에 다시 부름을 받잡고 職位에 복귀한 지도 어언 2년이 지났습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범위가 넓어져만 가는 小臣의 業務를 더이상 감당키도 어렵거니와, 臣보다 더한 지경에 이른 下級官吏들의 하소연을 듣고 있는 것도 괴롭기 한량없습니다.
이는 마치 車包를 卒 다루듯 함부로 내돌리심이며, 卒에게 馬나 象이 되라 요구하심이니, 臣이 어찌 이를 감당하오리까.
더군다나 主君이 가시는 방향이 臣의 뜻과 맞지 않고, 이에 대해 眞言할 勇氣와 誠實性조차 버린 지 오래이니 臣이 職位를 유지하고 있음은 앞으로 主君이 가시고자 하는 길에 십분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는 것이 明若觀火한 것입니다.
小臣, 이미 알고 있사옵니다.
지금은 臣이 토끼를 입에 물고 있기 때문에 붙들어두고자 하심을.
그러나 몇 년 동안 苦樂을 같이 한 동료들이 主君에게 어찌 버려졌는지를 누차 보아온 臣으로서는, 삶아진 개꼴이 되기 전에 입에 문 토끼를 놓아주고 들판으로 달아나는 편이 현명한 처사라고 믿어 의심치 아니하옵니다.
다만 한 가지 걸림돌이 있다면, 이제껏 받아먹은 祿에 길들여져 있음을 否認하기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상에 가득한 膏粱珍味를 한 숟갈의 좁쌀밥과 바꾸고, 다달이 찍히던 통장의 +가 -로 돌아서는 한이 있더라도 산 입에 거미줄 치지는 않으리라는 확고한 믿음을 바탕으로, 부디 이번 주를 넘긴 후에는 달포가 지나든 반 년이 지나든 主君의 드높으신 面上을 다시는 뵐 일이 없기를 바라며, 이만 미천한 臣의 出辭表를 마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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