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적 일인가 기억나지 않는다. 며칠, 혹은 몇주 전 냥이카페에 갔다가 ["심장 약한 분 보지 마세요" 타죽은 고양이]라는 타이틀이 눈에 띄었다. 클릭하지 않았다. 나는 수술용 칼이 피부에 닿는 것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인간이다. 동물실험이 어쩌고, 밍크코트가 어쩌고 하면서 자극적인 사진들이 올라올 때마다 나는 외면했다. 어떤 분야에 대해 관심을 촉구하기 위해 그런 자극적인 사진들을 배포하는 무리들에 대해서도, 나는 그다지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렇게 그 제목을 잊고 있었는데, 가끔 가는 냥이갤러리에서 그 사진 때문에 난리가 난 것을 보게 되었고, 뒤늦게야 그 내용을 알게 되었다. 12장의 사진이었나... 그것은 어떤 인간이 고양이에게 시너(였나? 휘발유였나, 어쨌든)를 붓고 불을 붙여 태워죽이는 장면들이었다. 어떤 인간이 고양이에게 불을 붙이고, 고양이가 타죽어가는 모습을 태연자약하게 촬영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냥갤에서 어떤 분이 그 사진 올린 사람을 고발했고, 실제 고양이를 태워죽인 그 인간은 어떻게 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못 박힌 고양이에 이어 타죽은 고양이까지 등장하니 동물보호단체나 애완동물 기르는 사람 모임이나... 분노로 들썩이고, 다시 동물보호법 강화에 대한 이야기가 불거지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 문제가 동물보호법에서 다루어질 차원이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인간성에 대한 논란이 뒤따라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혹은 인간답지 못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고양이를 불태운 그 인간은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을까?
불 붙은 고양이가 길길이 날뛰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즐거웠을까?
혹은 쓰레기를 뒤지고 시끄럽게 울부짖으며 자신의 신경을 건드린 것에 대한 보복일까?
...어느 쪽이든, 고양이에게 불을 붙이고 실시간 사진촬영을 한 그 인간에 대한 관대한 마음은 눈꼽만치도 들지 않는다.
이런 류의 기사에 항상 나오는 말, 그건 개고양이 기를 돈으로 사람이나 도우란 말이다.
북한에는 굶어죽어가는 어쩌고, 지금 이 시간에도 노숙자들이 거리를 헤매고...
그래서, 어쩌라고.
내가 기르는 동물은 내 눈 앞에서 병을 앓고, 먹이를 조르고, 사랑해달라고 떼를 쓴다.
굶어죽어간다는 아이는 내 눈 앞에 없고, 헤매는 노숙자는 불쌍하다기보다 무섭다.
그들이 그리 불쌍해 보인다는 당신은 혹시, 정부가 북한에 쌀이며 밀가루 퍼준다고 욕하면서 국내 경제나 살리라고 열변을 토했던 사람과 동일인물은 아닌가?
남들 헛돈 쓴다고 삿대질 할 시간에, 그 손가락으로 스스로를 가리켜보기를 권한다.
나는 인간보다 개나 고양이가 더 낫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그리고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들보다는, 내가 키우는 고양이가 내게 훨씬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눈 앞에서 생판 모르는 인간과, 내가 키우는 고양이가 죽어가고, 둘 중 하나밖에 구할 수 없다면, 나는 인간을 구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렇게 할 것이다.
내가 인간이기 때문에, 나는 어떠한 동물보다 인간의 목숨이 중요하다는 데 동의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내가 어떤 목숨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즐거움이나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타 동물의 생명을 잔인하게 박탈할 때,
나는 계속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믿음을 지켜나갈 수 있을까?
타 동물들을 잡아 찢어 죽이면서 쾌감을 느끼는 것이, 인간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하나?
그런 인간들도 나름의 삶이 있고 나름의 존엄성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나?
인간답다는 것은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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