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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s양에게

근 10년만에 교회를 가본 것 같다. 네 요청으로 참가하기는 하였으나, 여전히 내게 하나님이나 예수님이라는 이름은 낯설기 그지 없구나.

특히 마지막에 나누어준 설문지, "하나님을 영접하시겠습니까? 네/아니오/모르겠다'의 선택은 대단히 부담스러웠다. 나는 하나님의 부름에 이끌려 교회를 간 것이 아니라, 내 오래된 친구의 부탁으로 거기 간 것이었기에, 거기에 대고 '아니오'를 선택한다는 것은 너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피하고 피하다가 결국 나도 모르겠다를 선택하고 말았지만, 아마도 그게 정확한 답일 것이다. 앞일은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일이니까.

오랜만에 가본 교회는 내가 어렸을 때의 풍경과 그다지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찬송가를 부르고 성경을 봉독하고 기도를 하고 신앙체험을 이야기하고 사도신경을 외우고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그러나 그 모든 것이 내게는 너무 낯설었다. 전도 이벤트를 마련하신 목사님의 열의는 옳은 것이었으나, 그 한 번의 예배가 근 20년간 신 없이 살아온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의 효과를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하셨을까...

당시 나는 '눈 먼 자들의 도시'라는 책을 읽고 있었다. 정체불명의 전염병으로 모두가 눈이 멀어가는 가운데 홀로 눈이 멀지 않은 자를 다루고 있는 소설, 혹 예수의 기분이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였다. 하나님, 그들은 (눈 멀어)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르옵니다, 부디 그들을 용서하소서.

기독교에서는 인간을 가리켜 무지한, '눈 먼 어린 양'이라는 식의 표현을 많이 쓰는 것 같다. 그러나 반대로, 고대의 문학작품에 등장하는 예언자는 맹인이 많았고, 그들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무언가를 보는 능력을 지닌 현명한 사람으로 존경받았다. 이 차이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물론 내가 그걸 알리는 없지만, 다만 시점의 차이가 아닌가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신이 보는 인간'과 '인간이 보는 인간'.

주기도문이나 사도신경을 읽으면 예외없이 기운이 빠지고 짜증이 난다. 나는 거기에서 단 두 가지를 본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라는 것과 '내 죄를 대속하신 예수님'이다. 여기에는 지금 이곳에 살고 있는 '나'라는 존재가 끼어들 틈이 없다. 내 의지와는 상관 없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질 것이며, 역시 내 의지와는 상관 없이 예수는 2000년 전에 인류의 죄를 끌어안고 대신 죽었다. 그리고 끊임없이 강조되는 '원죄'의 압박. 거 참, 낙원을 만들었으면 지들끼리 멋대로 잘 살게 두시지 금기는 만들고 그러시나...요.

너는 일명 모태신앙이라 자연스럽게 주님의 은총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 모르나, 너와 나는 시작점이 너무 다르다. 나는 신을 향한 '믿음'이 무엇인지를 도무지 모르겠다. 무엇을, 왜 믿어야 하나. 믿음 속에 충만함이라니, 믿겨지질 않는 것을 믿으라 하고 믿으면 충만해지리라니 어리둥절할 뿐이다.

나는 종교가 없다, 그러나 신이 없다고 여기지는 않는다. 무교이나 무신론자는 아니라는 얘기다. 신은 있을지도 모르고, 없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내가 알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진인사대천명이라 하여 사람이 할 일을 다 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고 했을 때, 그 하늘이 단순히 운인지, 혹은 신이라면 알라신인지, 천지신명인지, 하나님인지, 부처님인지 그건 내가 알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신은 하나이나 사람들이 각기 다른 명칭으로 부르고 각기 다른 교리를 만들어내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때때로 종교가 있는 사람들이 부럽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최후까지 믿고 기댈 수 있는 든든한 神格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삶의 힘이 되는 일일까. (약효를 믿으면 실제로 치유된다던데, 신이 치유해줄 것을 견실하게 믿는다면... 유후~) 그러나 역시나 믿겨지지 않는 것을 억지로 믿을 수는 없는 일이라서, 내게는 그런 은총이 없다.

내가 다치거나 병에 걸린다 해도, 일이 실패해서 개만도 못한 신세가 된다 해도, 그것은 일차적으로 내 잘못이고, 이차적으로 다른 누군가의 잘못이며, 부차적으로 재수가 없었을 뿐이다. 신을 믿지 않아서 벌을 받았다는 생각 따위는 전혀 들지 않는데다가, 더더군다나 (믿지도 않는) 신에게 버림받을 리가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교회체험 일일 이벤트는 실패로 돌아갔다.
내게 왜 믿지 않느냐고 묻는 것은, 너에게 왜 믿느냐고 묻는 것 만큼이나 어리석은 일이 아닐까. 신을 향한 믿음에는 이유가 있을 수 없다.

기독교인들에게는 어디에나 있으되, 믿음이 없는 자에게는 있으나 없으나 매한가지인 하나님이기에, 전도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지옥에 떨어진다고 겁을 주고, 아픈 몸이 치유될 수 있다고 희망을 주고, 믿으면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진다는 식으로 전도를 하는 모습들이 보인다. 그러나 그렇게 거두어들인 신앙심이란 얼마나 얄팍할 것인가.

그래도 네가 가끔 나를 위해 기도하리라는 것을 안다. 하나님을 믿지 않지만, 너의 호의에 감사한다. 언젠가 어떤 알 수 없는 계기로, 신의 은총이 가득한 상태를 경험할 수 있기를, 나도 기대해본다.
私事思史  |  2005/12/02 1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