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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위로 연이의 털을 잘랐다.
어쩌다 장모종이 이곳에 깃들어 관리도 못 받고 있지만
동물병원 가서 마취 받고 미용을 하느니
너와 나를 위해 가위질이라도 하는 게 나을 듯하다.
대강대강 잘라 놓으니
가출했다가 아버지에게 붙잡혀 머리카락을 잘린 소녀같다.

곤냥을 말한다  |  2009/09/23 13:09

시간이 흐르면
절대 용서할 수 없었던 사람들도 희미해진다.
여전히 용서할 수 없지만
예전만한 증오는 동반하지 않기 때문에
조금 더 편안해진다.


실수를 하고
그 실수를 만회해보려고 답지 않게 무리하다가
다시 실수를 저지르고
후회와 자신에 대한 실망을 안주삼아 술을 마시다가 또
실수를 저지르고...
최초의 실수로 흐트러진 마음은 계속 실수를 창조해낸다.


사람은 완벽하지 않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실수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지만
누구나 실수를 한다.
적절히 균형을 유지하던 감정들 중 몇 개가 미친 년 널뛰기를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게 되기도 한다.


잘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적당히 잊을 필요가 있다.
그리고 잊으려고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시간이 나쁜 기억들을 점차 데려가 준다.
파도가 해변의 모래를 끊임없이 바꾸어놓듯이
시간은 우리의 기억을 끊임없이 쓰다듬는다.

私事思史  |  2009/09/21 14:21
리빙 라스베가스를 정말 오랜만에 다시 봤다.

스무 살 즈음에 정말 가슴이 울렁거릴 정도의 감흥으로 봤던 영화인데
파일(?)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물음표는 왠지 죄책감을 느껴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인데, 실로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다시 틀어보지는 못했다.
그 저릿하고도 아린 느낌을 다시 감당할 준비가 안 되어 있었다는 것이 적당한 답이 될 것 같다.
이 영화를 다시 보느니, 화양연화를 보는 편이 훨씬 편해서(?) 화양연화는 몇 번 다시 봤지만서도.

대학교 때 이 영화를 봤을 때는 사랑 영화라고 생각했는데-사실, 이 영화 가지고 레포트까지 썼기 때문에 몇몇 부분은 생각나는 것도 있다. 사랑하기 때문에 옳은 길(?)로 이끌어야 하는가, 아니면 사랑하기 때문에 상대가 원하는 길을 가도록 방치(?)해야 하는가, 라는 걸 가지고 고민했었던가.
물론, 그때나 지금이나 내 답은 후자 쪽이다. 전자는 이기적인 자기만족이다. 상대가 망가져가는 걸 내가 견딜 수 없기 때문에 계도(?)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거의 십년만에 다시 보니, 사랑보다는 외로움에 대한 영화로 읽히는 건
내가 변했기 때문일까?



제목을 이끌어낸 질문이 무엇이었는지는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
"왜 술을 마시다 죽으려고 하나요?" 내지는 "왜 LA에 왔죠?" 뭐, 이런 거겠지.
니콜라스 케이지는 말한다. "그런 게 정말 궁금한 거요?"
엘리자베스 슈가 고개를 끄덕인다.

얼마나 형식적인 질문, 혹은 대화를 많이 하는지 떠올린다.
왜 이 일 해? 그게 재밌어? 휴가 계획 있어? 애인하고는 잘 지내? 결혼은 언제 해? 주말은 잘 보냈어?
...아아, 그런 게 정말 궁금한가요?
대답은, "아니."

애매한 침묵을 메꾸기 위해
얼마나 쓰잘데기 없는 대화를 이어가야 하는가.
얼마나 능수능란하게 거짓을 진지하게 늘어놓아야 하며
전혀 궁금하지 않는 것을 진심으로 관심있다는 듯이 물어봐야 하는가.
무난한 답변을 검색하는 쉴새 없는 머리회전 속에서
지친다.

외롭다.
진지하지 않은 대화의 끝은 언제나
밀가루 음식을 너무 많이 먹은 것처럼 신물이 올라오고 텁텁하다.

농담이 아니라, 나는 정말
진지한 사람인데.
내가 니콜라스 케이지처럼 지금 술병을 빨고 있어서가 아니라 정말,
외롭다.
그런 식의 대화밖에는 이제 용납되지 않는다.
혼잣말  |  2009/09/14 2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