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빙 라스베가스를 정말 오랜만에 다시 봤다.

스무 살 즈음에 정말 가슴이 울렁거릴 정도의 감흥으로 봤던 영화인데
파일(?)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물음표는 왠지 죄책감을 느껴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인데, 실로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다시 틀어보지는 못했다.
그 저릿하고도 아린 느낌을 다시 감당할 준비가 안 되어 있었다는 것이 적당한 답이 될 것 같다.
이 영화를 다시 보느니, 화양연화를 보는 편이 훨씬 편해서(?) 화양연화는 몇 번 다시 봤지만서도.

대학교 때 이 영화를 봤을 때는 사랑 영화라고 생각했는데-사실, 이 영화 가지고 레포트까지 썼기 때문에 몇몇 부분은 생각나는 것도 있다. 사랑하기 때문에 옳은 길(?)로 이끌어야 하는가, 아니면 사랑하기 때문에 상대가 원하는 길을 가도록 방치(?)해야 하는가, 라는 걸 가지고 고민했었던가.
물론, 그때나 지금이나 내 답은 후자 쪽이다. 전자는 이기적인 자기만족이다. 상대가 망가져가는 걸 내가 견딜 수 없기 때문에 계도(?)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거의 십년만에 다시 보니, 사랑보다는 외로움에 대한 영화로 읽히는 건
내가 변했기 때문일까?



제목을 이끌어낸 질문이 무엇이었는지는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
"왜 술을 마시다 죽으려고 하나요?" 내지는 "왜 LA에 왔죠?" 뭐, 이런 거겠지.
니콜라스 케이지는 말한다. "그런 게 정말 궁금한 거요?"
엘리자베스 슈가 고개를 끄덕인다.

얼마나 형식적인 질문, 혹은 대화를 많이 하는지 떠올린다.
왜 이 일 해? 그게 재밌어? 휴가 계획 있어? 애인하고는 잘 지내? 결혼은 언제 해? 주말은 잘 보냈어?
...아아, 그런 게 정말 궁금한가요?
대답은, "아니."

애매한 침묵을 메꾸기 위해
얼마나 쓰잘데기 없는 대화를 이어가야 하는가.
얼마나 능수능란하게 거짓을 진지하게 늘어놓아야 하며
전혀 궁금하지 않는 것을 진심으로 관심있다는 듯이 물어봐야 하는가.
무난한 답변을 검색하는 쉴새 없는 머리회전 속에서
지친다.

외롭다.
진지하지 않은 대화의 끝은 언제나
밀가루 음식을 너무 많이 먹은 것처럼 신물이 올라오고 텁텁하다.

농담이 아니라, 나는 정말
진지한 사람인데.
내가 니콜라스 케이지처럼 지금 술병을 빨고 있어서가 아니라 정말,
외롭다.
그런 식의 대화밖에는 이제 용납되지 않는다.
혼잣말  |  2009/09/14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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